본문 바로가기

구스타프 클림트의 생애와 작품, 키스, 생명의 나무, 에밀리 플뢰게와의 사랑, 스토클레 벽화

by j-green 2022. 1. 23.
반응형


구스타프 클림트의 생애와 작품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7월 14일 오스트리아 빈 근처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클림트의 아버지는 금이나 은을 이용해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었어요. 클림트는 가난했지만 그의 솜씨를 알아봐 준 친척 덕분에 미술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구스타프 클림트





빈 미술 공예 학교에 다녔던 클림트와 동생은 친구와 함께 예술가 모임을 만들었고 국립 극장의 천장 벽화나 장식 등을 만들며 이름을 알렸어요. 1892년 동생 에른스트가 죽고 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클림트는 몇 년 동안 슬픔에 빠졌어요. 클림트는 가족들을 돌봐야했고  빈 대학으로부터 천장 벽화를 부탁받아 <법학>,<의학>,<철학>을 주제로 신비로운 그림을 그렸지만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는 비난을 받았어요. 클림트는 기존 보수 화단에 대립해 1897년 분리파를 창설합니다.

빈 대학 천장화 &lt;의학&gt; 중 일부

 

 

 

 

 

&lt;에밀리 플뢰게의 초상&gt;1902년





클림트는 어머니가 죽은 뒤 두 여동생과 살았고 평생 결혼은 하지 않았어요. 에밀리 플뢰게는 클림트와는 12살 차이가 나는  죽은 동생 와이프의 여동생이었고 평생 그녀와는 문화적인 것을 함께하고 토론하고 여행하며 친구처럼 의지하는 사이였어요. 클림트는 평생 네 번의 에밀리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1902년에 마지막으로 그려요. 에밀리 플레게는 언니의 의상실에서 일했고 주로 남부 유럽 지역에서 원단을 들여오는 일을 했어요. 클림트가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녀와 400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 받았지만 클림트가 죽은 후 플뢰게가 대부분 태워버렸다고 합니다. 클림트는 평생 많은 여인들의 그림을 그렸고 바람둥이라는 소리도 들었고 성적으로 문란했지만 영원히 마음으로 의지했던 여인은 에밀리 플뢰게입니다. 클림트가 스페인 독감에 걸려 죽어갈 때 에밀리 플뢰게가 함께했고 그의 대부분의 유산이 에밀리에게 상속됐어요.



1903년 클림트는 이탈리아 라벤나를 여행하다가 황금빛의 모자이크 작품을 보고 황금빛에 반해서 황금색을 작품에 사용하기 시작해요. 황금색을 이용해서 수많은 여인의 초상화를 그렸고 이 시기를 클림트의 '황금시대'라고 불러요. 황금빛으로 빛나는 여인들의 모습은 성공을 나타내는 동시에,물질에 끌려다니는 인간의 모습을 의미해요. 주로 여성과 자연의 풍경을 폭력적이고 부정적인 모습으로 표현해서 빈에서는 비난받았지만 유럽에서는 관심을 끌었어요.



<여인의 세 시기>는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어가는 여자의 일생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엄마의 황금빛 머리카락은 황금처럼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나타냅니다.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늙은 여자에게서는 슬프고 어두운 느낌이 납니다. 황금빛 배경과 꽃들로 행복한 느낌을 주는 아기와 엄마와는 대조를 이루고 있어요.

&lt;여인의 세 시기&gt; 1905년

 

 

 

 


 




 

 

황금 드레스를 입고, 황금 팔찌와 목걸이를 두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의 초상화입니다. 빈의 유명한 사업가, 블로흐 부인으로 클림트는 부자의 아내를 표현하기 위해 금박과 은박을 사용했어요. 당시 초상화에 황금을 사용하는 것은 새로운 시도였는데 클림트의 작품 가운데 황금색이 가장 많이 사용된 것으로 클림트의 초상화 중 가장 세련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나치 정권 시대에 히틀러의 소장품으로 유명합니다.

&lt;아델레 블로흐 바우어1&gt;1907년





남자의 커다란 등과 옷이 여인을 가려서 하얀 얼굴만 보이는 벽화입니다.철도 회사 간부인 스토클레의 저택 식당 벽화의 일부분입니다.

스토클레 벽화 중 &lt;충만&gt; 1905~1909년

 

 

 

 



 



 

 

 

 

<스토클레 벽화>는 스토클레 저택의 식당 입구를 장식하고 있으며, 가운데 생명의 나무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 벽화를 가득 채우고 있어요. 왼쪽은 여인 혼자, 오른쪽은 연인이 포옹하는 그림입니다. 예전에 이 그림 집이나 식당 입구에서 많이 봤죠. 저도 한 번 사서 걸어봤었어요.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lt;기다림&gt;&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lt;생명의 나무&gt;&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lt;충만&gt;





클림트가 사랑했던 에밀리 플뢰게의 볼에 키스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클림트는 계란을 사용하는 템페라 기법과 금박과 은박을 꿀이나 아교 등의 접착제로 붙여서 화려하고 장식적인 그림을 그렸어요.

&lt;입맞춤&gt; 1907~1908년




클림트는 초상화로 유명해져서 돈 많은 상류층 부인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여유롭게 살았어요. 그러던 중 1908년 유럽 대지진과 1912년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는 사건으로 인해 클림트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로 침체기를 보냅니다.



말년에는 여름에는 호숫가 마을에서 지내며 <자작나무가 있는 농가>,<아터 호숫가의 카머 성>,<운터라흐의 산비탈>,<너도밤나무 숲>등을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풍경화를 그렸어요.



큰 상점을 여러개 운영하는 여성 사업가의 초상화입니다. 이 여인은 그림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고 했고 클림트는 동양적인 느낌의 초상화를 그렸어요. 클림트 작품 후기에는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회화적인 요소를 추가해서 그림을 그렸어요.

&lt;프리데리케 마리아 베어의 초상&gt;1916

 

 

 

 

 


 




 

 

 

 

클림트는 <신부>라는 작품을 미완성하고 죽어요. 이 작품 때문에 클림트의 독특한 작업 방식이 밝혀졌는데요, 먼저 알몸을 그린 뒤 그 위에 옷을 덧칠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클림트는 여인을 신비롭고 매력적으로 표현한 화가로 평가받지만 당시에는 그가 그린 여인들의 모습을 비난했어요.

&lt;신부&gt; 죽기 직전까지 그린 미완성 그림




클림트는 건강이 나빠지고 그당시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으로 1918년,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lt;운터라흐의 산비탈&gt;


오스트리아 북부 아터 호숫가의 풍경화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 해바라기,고흐의 생애와 작품, 별이 빚나는 밤, 아를의 노란집 고흐의 방, 자화상

빈센트 반고흐의 생애와 대표 작품 구름 무리를  가르는 검고 구불구불한 사이프러스나무, 휘몰아치는 듯한 하늘과는 대조적인 아담한 교회를 품은 고요한 마을, 자유롭고 둥그런 별빛과 대조

jowaa.tistory.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