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생애와 대표 작품,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by j-green 2022. 2. 17.
반응형


레오나르도 다빈치 생애와 대표 작품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52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작은 마을 빈치에서 태어났습니다. 빈치 출신의 레오나르도  라는 뜻입니다. 정식 결혼을 하지 못한 높은 변호사 신분의 아버지와 농부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할아버지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다빈치는 어린 시절 주변의 사물을 그림으로 그리며 성장했어요. 다빈치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는 피렌체에서 유명한 베로키오 공방에 보냅니다. 다빈치는 이 공방에서 회화, 조각, 공학 등을 배웠고 자신의 재능을 키워 나갔어요.

  • 프랑스에서 알프스를 넘어 피사, 로마, 밀리노, 피렌체, 베네치아를 여행했었는데요, 피렌체는 가죽 공방이 즐비했어요. 2만원 3만원에 좋은 가죽 가방이나 샌들을 살 수 있었어요.
  •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그곳 어디쯤  공방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걸까요?!

 

<예수 세례> 다빈치, 베로키오 1475년경

 

 

세례자 요한이 황금빛 그릇으로 강물을 떠서 예수의 머리에 물을 붓는 그림입니다. 예수의 머리 위에 비둘기, 그 위 손은 하느님의 손이고 비둘기를 날려 보내는 그림입니다.스승인 베로키오의 그림에 다빈치는 투명한 강물, 멀리 보이는 산, 옷을 들고 있는 아기 천사들을 그려 넣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초상>보시

 

<체칠리아 갈레라니의 초상>다빈치

 

30세에 다빈치는 피렌체를 떠나 밀라노로 가서 17년 동안 지내며 작품활동을 합니다. 스포르차 공작의 후원으로 그림도 그리고 기계와 무기도 만들고 하면서 다양한 재능과 실력을 펼쳤어요. 이때 <최후의 만찬>이나 <체칠리아갈레라니의 초상> 같은 걸작도 탄생합니다.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은 르네상스 최고의 초상화로 꼽힙니다.



<최후의 만찬>1495~1498년

 

예수가 처형 당하기 전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식사하는 모습을 그린 <최후의 만찬>입니다. "너희들 중에 나를 배신하는 자가 있다."라는 예수의 말에 12제자가 허둥대는 모습입니다.

이 그림은 다빈치가 '원근법' 과 '투시법' 기법을 적용해서 그린 그림입니다. 전통적인 벽화는 회벽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그 위에 색을 칠해서 급하게 완성해야하는 프레스코 기법입니다. 당시의 벽화 기법인 '프레스코'기법을 쓰지 않고  '템페라'로 그려서 물감이 떨어져 나가고  색이 흐려지는 등 자꾸 망가졌지만 다빈치의 새로운 기법에 도전하는 정신은 높게 평가받습니다. 템페라는 안료에 달걀이나 꿀을 섞어서 사용하는 것으로 광택이 나며 색이 아름답습니다.



 

  • <최후의 만찬> 원본은 다빈치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위치

 

 

 

 

 

<밀라노대성당>위치

 

바돌로매, 작은 야곱, 안드레

바돌로매는 벌떡 일어나 있고, 작은 야곱은 베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고, 안드레는 깜짝 놀라 두 손을 들고 있습니다.



베드로, 기롯 유다, 요한

 

베드로는 배신자가 누구냐며 칼을 들고 화내고, 예수를 배신한 가롯 유다는 돈 주머니를 감추고 있고, 요한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습니다.

도마, 큰 야곱, 빌립

도마는 집게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큰 야곱은 손을 뻗어 예수를 위로하려는 듯, 빌립은 가슴에 두 손을 얹으며 배신자가 자신인지 묻고 있습니다.

마태, 유다, 시몬

마태, 유다, 시몬은 서로 배신자가 누구냐며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빈치는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온갖 것들을 스케치하고, 별과 달을 관찰하고, 사람의 몸을 제대로 그리고 싶어 몰래 시신을 해부해 보기도 했어요. 30구 이상의 시신을 해부하였고 뇌와 두개골의 크기와 모양, 산모의 배 속에 든 아기, 혈관의 구조와 신경 조직 등에 대해 연구했어요.



<여성의 인체 해부도>

 

 

 

 

 

<비행 장치 설계도>



다빈치는 아무도 생각 못한 기계나 무기를 많이 발명했어요. 태엽을 감아 움직이는 수레, 흙을 파내는 준설차, 낙하산, 장갑차 등을 설계했어요. 박쥐의 날개를 연구해 비행 장치도 설계했어요.





다빈치가 51살, 1503년에 이탈리아 전쟁으로 스포르차 가문이 밀라노를 떠나자  다빈치는 다시 피렌체로 돌아옵니다. 피렌체 사람들은 천재 화가로 명성을 떨치는 다빈치를 크게 환영하고 그림들을 주문했지만 다빈치의 예술 활동은 고집스럽고 자유스러웠어요.




<모나리자> 1503~1506년경


수줍은 듯한 미소로 유명한 <모나리자>는 '리자 부인'이란 뜻입니다. 리자 부인은 당시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인 조콘도의 아내라고 알려져 있지만, 모나리자의 정확한 모델과 제작 연대는 알 수 없어요. 당시에는 이마를 넓어 보이게 하려고 눈썹을 없애는 것이 유행이었어요. 다빈치는 이 그림을 윤곽선을 또렷이 그리지 않고 색의 변화를 부드럽게 표현하는 '스푸마토' 기법으로 그렸어요.


  • ​2012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직접 보았어요. 프랑스 여행 날짜와 루브르 박물관 휴장하지 않는 날짜가 맞아야 볼 수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오후 4시반에 입장해서 들어가자마자 왼쪽 벽에 단독으로 걸려 있는 그림을 보았어요. 10년이 지난 지금 그림의 아스라한 모습과 Sortie(출구)라는 프랑스어와 박물관 안에서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메세지가 기억이 나네요.

 

다빈치는 수학, 건축학, 음악, 문학, 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관찰하고 연구한 것들을 빠짐없이 메모로 기록한 것이 1만장 이상인데 현재 7,000장 이상만 남아 있어요. 메모는 좌우가 바껴서 기록돼 있는데 다빈치는 왼손잡이라서 잉크가 묻는 것을 싫어해서, 다른 사람들이 읽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이렇게 썼다는 등 여러 의견이 있어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다방면에 걸쳐 천재입니다.



 

 

다빈치의 왼손글씨로 쓴 메모




1506년 다빈치는 프랑스 국왕의 부름으로 밀라노에서 궁정 예술가가 되어 축제 행사도 진행하고,  병기 제작 책임자로 일합니다. 그러던 중 전쟁이 일어나 밀라노가 혼란에 빠지자 다빈치는 1513년 로마로 가서 교황 레오 10세가 마련해 준 거처에서 지내며 기념 주화를 제조하는 기계도 만들고, 해부 실습도 하며 지냅니다. 다빈치를 후원해 주던 줄리아노 데 메디치도 죽고, 젊은 화가들한테 밀려 점점 원하는 일을 맡지 못하게 되자 많이 외로운 생활을 합니다. 그러다 1517년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의 후원을 받고 프랑스 루아르 강의 앙부아즈 궁에 기거하면서 <모나리자>를 완성합니다. 편안한 노년을 보내다가  1519년 4월 23일 죽음을 직감했고 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3대 거장​
  •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 ~1519
  • 미켈란젤로:1475∼1564
  • 라파옐로:1483~  1520


반응형

댓글